여름과 회복 : 두 번째
짠. 이제 본론입니다.
그간 '회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봤어요. 소진, 그리고 마음을 이어 몸의 회복에 대한 🌳의 답장을 받고 나니, 문득 '탈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화상 입어 본 적 있나요?
저는 기름에 데서 생긴 상처와 어릴적 보드를 타다가 생긴 찰과상 정도가 있어요. 병원 통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던 상처라 기억에 유독 선명한 상처들이에요. 아무튼, 화상으로부터의 회복 과정에 대해 나열해 보자구요.
1) 바람만 닿아도 따가운 시기를 지나서
2) 벗겨진 살갖에 약 바르고, 드레싱 하다 보면
3) 거칠거칠하게 딱지가 앉잖아요.
4) 그 딱지가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내버려 둡니다.
+ 탈각의 과정에서는 자외선 차단에 유의하세요.
여린 살이라 해를 보면 까맣게 타서 흉이 더 오래 가요.
저는 가끔 유독 약해지는 시기가 있어요. 그럴 땐 마음이... 꼭 화상을 입은 것 같더라고요.
살갗이 모두 벗겨져 바람만 스쳐도 따가운 기분이 들어요. 그런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었지? 돌이켜 보니, 기억 저편에 있던 반갑고 멋진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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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지만 바닷가재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들의 삶에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성장의 연관성에 대해 말합니다.
탈피를 통해 성장하는 바닷가재는 연약한 살성을 가진 동물이라서 단단한 껍질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해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요. 가재는 계속 자라나지만 껍질은 그렇지 않아서, 가재들은 그때의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기 위해 바위 밑으로 들어갑니다. 가재들이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탈피의 과정을 필요로 성장했을 거라는 의견을 던지며 이야기는 마무리되어요.
바닷가재는 생물학적 이론으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럼에도 생존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저희 식탁에 올라오거나, 앞서 말한 탈피의 과정에서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어 생존에 실패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겪는 이런 탈피의 과정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진리인냥 뱉는 "시간이 약이다-" 같은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싫어요. 진짜 메롱이고 뿡이고 재수탱 같습니다. 얼핏 반만 맞고 반은 아예 텅텅 비어 있는 말처럼 느껴져요.
정말 시간이 약이었을까요? 저의 화상과 탈피들은 충분한 '돌봄'의 시간들 덕분에 염증 없이, 덧나지 않고, 무사히 생존하고 회복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참 운 좋은 서로가재입니다. (이전 시즌 메일링 첫 번째 이야기로 갖고 왔던 주제죠! 돌봄에 대한 이야기요!)
이미 작아진 어릴적 옷을 두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기까지 많은 슬픔과 작별이 필요하죠. 충분한 애도의 시간도요. 이건 분명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은 맞지만, 온전히 혼자 할 수는 없는 일 같아요. 탈피라는 과정을 혼자 해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바닷가재들이 생존에 실패한 것은 아닐까 추론해 봐요.
우리는 갑각류가 아닌 인류잖아요? 사회적 동물이요. 저 같은 경우, 인간은 탈피 과정에서 벗겨진 살갗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이 지극한 사랑의 과정들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현과 단둘이 나누던 교환 일기의 시간도 이런 것이었어요. 제목에 언급된 지극한 사랑, 이라는 말도 서현의 일기로부터 만난 텍스트입니다. 이 지극한 사랑이 없다면 여전한 마음으로, 자꾸만 멈춘 시간에 남겨졌을 것 같아요. 시험지에 세모 쳐 두고, 시험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그 문제를 잊지 못하는 꼬릿한 마음 같은 기분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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