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생채기가 나고, 피가 나고 멍이 들고, 뼈가 으스러져도 말이야.
그럼에도 건반을 두드리고, 반찬을 챙겨주고, 반지를 끼워주고,
치마를 빌려주고, 머리를 쓸어넘겨줄 수 있는 이유가 무얼까, 무얼까, 정말 무얼까.
그런데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어.
그 답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이었어.
내가 나고, 네가 너고, 진이 진이기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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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모두가 스펀지 같아. 조금 다를 뿐인 노란 스펀지들.. 인 것만 같아서,
내가 누구와 같이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
그런 그에게 스치듯 섬유 유연제 향이 나고, 까미와 같은 숨소리가 나고,
구수한 숭늉을 들이킨 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면,
아, 더 이상 그가 인간이든 스펀지든 중요하지 않아져.
그저 우리가 맞닿아있는 이 잠시 잠깐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아주 재미나게 보내야겠다. 생각하게 돼.
여름을 잘 지나서 다행인 우리, 남은 여름을 모두 견뎌냈던 우리.
가을도 서로로, 서현으로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아주 재미나게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