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아, 네가 그랬지.
사랑은 결정하는 것 같다고, 그냥 사랑하겠다고 선택하는 거라고.
그 말을 듣는데 "사랑이 전부야!" 하던 우리의 선언이 문득 떠올랐네.
왜곡 없는 어떤 마주침의 순간.
그 찰나를 위해 사랑을 다짐하던 말랑말랑한 결의.
나는 가끔... 우리가 가감 없이, 투명하게 마주쳤던 그때의 찰나가 지금의 우리를 끊임없이 마중 나오고 있다고 느껴.
도모할 거리는 되지 못할 테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언젠가 다시 마주칠 그 순간에 기대어 하릴없이 걸어나가는 우리에게ㅡ
그런 것이 있다고,
분명히 있다고 말해 주고 싶던 걸까?
우리는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한 건가?
*
얼마 전에는 소설을 읽는데 여기에도 태수가 나오는 거야.
<걷기의 활용> 속, "원하는 게 뭐야." 하고 묻던 태수 형의 입모양을 떠올리다가,
<그 개와 혁명>의 태수씨가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져가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새어나왔어.
어떤 웃음은 때때로 슬픔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구.
태수씨를 네게 이야기하고, 우리는 잠시 미에 대해 이야기했잖아.
나의 선미는 여전히 악당만 가득한 세계에 살아.
미가 되고 싶은 것이 유령인지, 히어로인지는 당최 알 수 없어서... 고민이라면 그런 것이 가장 고민이지.
미의 손과 발이 엉망인 사유를 알아도 그런 거 있잖아. 어떤 생애는 알아도 모르는 것 같고, 알고 있다는 것도 전부 내 착각 같아서.
하지만 내게 가장 고된 것은, 겁나는 것은, 미의 종잡을 수 없음 같은 것이 아니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일이 쉬운 것처럼 느껴질 때야.
요즘은 누군가 미워하지 않고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자꾸만 걸어.
성실히, 노동을 하듯.
응, 기어코 사랑 가까이에 다시 닿아 보려고.
네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근데 아파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어.
같이 걷고 있으니까.
병원 잘 다녀오고~
더위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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