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아, 나 계약금 이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발끝만 보던 어떤 산책을 드디어 끝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후련한데 불안해.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다른 층위의 산책에 도달할 수 있을까?
*
늘 궁금했어. 언제쯤이면 오류를 막아내기에 급급한 점검 상태 말고,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일런지.
그러기 위해서 욕망을 알아야 했어.
그건 때때로 강력한 작동 방식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레비나스가 말하는 거야. 욕망은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파고드는 거라고. 파고드는 거라면 자신 있는데.
타인이라는 신비를 쫓을 때라면 우리는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도 울고 갈 듀오가 되잖아.
자주 날 괴롭히던 집요함이 실은 나의 욕망이었다는 사실에 허허, 웃음이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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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는 귀엽고 슬픈 한계에 너무 실망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타인을 위한 신호를 던진 네가 멋지다고 생각해.
몇 밤의 대화를 나눴지만 나도 영영 너를 다 알 수 없을 테지.
그치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였다는 사실이니까ㅡ
레비나스는 타자가 신비라고 해. 영원히 나는 나일 뿐이라고.
사랑이라는 거 여전히 내게는 아름다운 것도, 숭고한 것도 안 되지만.
신비,
신비한 것 같아. 그 점이 좋아.
이토록 키치한 슬픔이라니!
네가 내게 신비이듯, 내가 네게 신비라면,
나도 기꺼이 쉬워지려고.
은설아,
자주 미안해.
늘 고마워.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오래오래 사이 좋게 지내자. |